계획된 평온, 세종의 여백에서 숨을 고르다

 

세상의 모든 도시는 저마다의 속도로 흐릅니다. 서울이 숨 가쁜 질주로 자신을 증명하고, 부산이 파도의 역동성으로 살아있음을 외친다면, 세종특별자치시는 조금 다른 언어로 말을 걸어옵니다. 이곳의 언어는 ‘정돈된 여유’이며, 그 목소리는 나직하고 정갈합니다.

사람들은 세종을 가리켜 ‘계획도시’라 부릅니다. 격자무늬의 도로와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들.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수식어 뒤에는, 사실 인간의 삶에 ‘쉼표’를 선물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다정한 배려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정교한 직선들 사이로 흐르는 부드러운 여백, 세종의 풍경 속에 머물러 봅니다.


호수, 하늘을 담는 거대한 거울

세종의 심장부에는 세종호수공원이 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이토록 넓은 물의 공간을 품고 있다는 것은 이 도시가 가진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른 아침, 호숫가를 산책하면 수면 위로 옅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호수는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잔물결을 일구고, 햇살이 내리쬐면 그 빛을 온전히 받아내어 은빛 윤슬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호수 중앙에 자리 잡은 ‘무대섬’은 마치 물 위에 뜬 조약돌 같은 형상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높게 솟은 정부청사의 건물들이 호수 너머로 아스라하게 보입니다. 권위와 행정의 상징인 건물들조차 호수의 평온한 물결 앞에서는 한낱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어깨에 얹힌 세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호수가 비춰주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이응다리, 끝없이 순환하는 산책의 시간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보행교(이응다리)**는 세종의 여유가 정점에 달하는 곳입니다. 완벽한 원형의 형태를 가진 이 다리는 이름처럼 거대한 ‘ㅇ(이응)’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그 길을 걷다 보면, 우리의 삶 또한 이처럼 순환하는 과정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낮에는 탁 트인 금강의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걷는 상쾌함이 있고, 밤이면 다리 전체를 감싸는 조명이 마치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응다리 위에서 만나는 풍경은 유독 느릿합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젊은 부부, 나란히 보조를 맞추며 대화를 나누는 노부부, 그리고 강바람을 맞으며 사색에 잠긴 청년까지. 다리의 둥근 곡선을 따라 걷다 보면 직선의 삶이 주던 피로감이 조금씩 옅어집니다. 모난 곳 없는 원형의 길 위에서 우리의 마음도 조금은 둥글어지는 모양입니다.


초록의 안식처, 국립세종수목원과 중앙공원

세종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 같습니다.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를 잇는 산책로와 녹지 축은 거미줄처럼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국립세종수목원의 거대한 유리 온실은 이 도시가 지향하는 ‘자연과의 공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기하학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진 온실 안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푸른 열대 식물들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춥고 거칠어도, 이곳의 시간은 언제나 따뜻하고 싱그럽습니다.

수목원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세종중앙공원의 잔디밭은 또 어떤가요. 아무런 장식도, 거창한 시설도 없는 그 넓은 빈터가 주는 해방감은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돗자리 하나 펴고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종은 우리에게 가장 사치스러운 휴식을 선사합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존재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그것이 세종이 가진 유화(柔和)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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